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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장] 그리고 호텔 헬스장에서의 뜨거운 레이스!스테이@도쿄 2025. 1. 16. 18:34
"미국 출장, 그리고 호텔 헬스장에서의 뜨거운 레이스!"
미국 미네아폴리스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시차 적응은커녕, 아침 4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너무 일찍 깨버린 김에, 호텔 헬스장이나 한번 들러보기로 했다. 호텔 부속 헬스장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운동기구들과 한쪽 벽 너머로 보이는 실내 수영장이 인상적이었다. 수증기가 천천히 올라오며 물 위로 빛이 아른거리는 풍경은 마치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내가 여기서 멋지게 운동을 해볼 차례였다.
자전거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됐다.
헬스장에 가면 항상 가장 만만해 보이는 운동기구를 고른다. 이번에도 역시 자전거를 선택했다. 큰 스크린이 달려있고 모든 조작이 터치 스크린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화면에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마치 섹시한 운동복을 입은 트레이너 언니들이 나를 부르는 듯한 비디오들이 줄지어 있었다. 눈길을 끌던 하나를 눌러봤다.
"자,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준비됐죠?"
나는 40대 아저씨 ㅜㅜ 영상 속 트레이너가 밝은 목소리로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크린 속 그녀와 함께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며 끊임없이 격려의 말을 건넸다. 실시간 대화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묘하게 몰입됐다. 이 언니, 정말 프로였다. 나도 모르게 페달에 힘을 주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순위의 마법에 빠지다.
그런데 자전거 화면 오른쪽 아래에 뭔가 거슬리는 목록이 있었다. 눌러보니 내 현재 순위와 함께 국적, 성별, 나이 같은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바로 같은 프로그램에 접속한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랭킹 시스템이었다. 처음엔 110등. '아, 이건 그냥 참고용이겠지.'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어라? 순위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92등. "이거... 좀 더 달려볼까?" 순간 이상한 승부욕이 솟아올랐다. 뒷사람의 기록이 보였고, 그 사람이 점점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캐나다 국적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이분이 나를 추월한다고? 그건 못 참지!"
내 앞사람과의 간격도 보였다. 더 이상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이건 레이스였다. 목표는 단 하나, 뒷사람에게 절대 지지 않으면서 앞사람을 추월하는 것. 그래서 계속 달렸다. 페달에 점점 힘을 주며 속도를 높였고, 마침내 70등까지 올랐다.
레이스의 끝, 그리고 교훈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페달을 멈추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실감했다. 거친 숨이 멈추지 않았고, 운동이 끝나자마자 바로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심장이 요동치던 그 순간, 깊은 숨을 내쉬며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했을까.'
하지만 이 레이스는 정말 대단했다. 실시간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며 경쟁하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자전거 운동을 넘어서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운동이라는 본질적인 즐거움과 함께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매력까지 더해졌다.
출장이 끝난 후, 같은 모델의 자전거를 검색해봤다. 언젠가 내 방에도 하나 들여놓아야지.
배운 점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건 단순하다. 열정은 어디서든 발견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작은 화면 속 랭킹에서든, 운동이라는 단순한 행위에서든, 나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건 기술이었다. 기술은 단순히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날의 레이스는 단지 운동이 아니라, 그런 가능성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다음번엔 50등을 노려볼까?" 지금도 그 화면 속 랭킹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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