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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그리고 나를 바꾼 사람들스테이@도쿄 2025. 1. 16. 07:22
그 해 여름, 그리고 나를 바꾼 사람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맞춰 매미가 울어댔고, 그 소리는 쉼 없이 이어졌다.
그늘을 찾아 주저앉고 싶었지만, 신호등 하나 건너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도쿄의 여름은 정말 그렇게 더웠다.
일본에서는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검은 양복과 흰 와이셔츠로 단정하게 면접을 본다.
그리고 신입사원이 되면 한동안 그 차림으로 회사 생활을 한다.
나도 그랬다.
여름이면 고객사 방문을 위해 반드시 자켓까지 챙겨야 했다. 이동 중 한쪽 팔에 걸쳐둔 자켓에서 땀이 배어나왔고, 와이셔츠의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곤 했다. 습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두꺼운 타월 소재의 손수건이 필수품인데, 그 손수건조차 흠뻑 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했다.
왜냐하면, 내 사수였던 상사가 정말 좋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늘 카페에 앉아 함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상사는 초등학생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처럼 친절하고 꼼꼼하게 한 글자씩 일본어를 읽어주었다. 내가 실수를 하면 웃으며 다시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본인이라면 10분이면 끝낼 일을 나와 함께 40분,
...때로는 그 이상을 할애했다.
그 회사를 떠나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상사를 떠올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그분의 나이를 넘었는데,
... 과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꼰대가 된다는 것
우리는 흔히 ‘꼰대’라고 한다.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으며, 그 방식대로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모습. 나이가 들수록 나도 모르게 그런 고정관념과 습관들이 생겨난다. 출근은 반드시 10분 전에 해야 하고, 업무 중 잡담은 피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꼭 정해진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등.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장 싫어했던 상사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사람을 평가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며, 내 가치관과 고정된 관념을 타인에게 투영하는 모습들.
...이런 것들은 결국 나의 욕심이 아닐까.
요즘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AI의 발전, 예상치 못한 산업의 등장,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익을 창출하는 시대. 이런 변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예전에 만났던 그 상사를 떠올려본다.
그분은 참 특별한 사람이었다. 자주 웃었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눈빛이 빛났다. 소설이나 만화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눈빛은 정말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의 결단력, 친절함, 그리고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와 관계를 잘 맺는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경험의 가치
나이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경험치라고들 말한다. 회사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쌓이는 경험이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손윗사람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단순한 업무 스킬을 넘어, 나이만큼 쌓인 그들의 경험은 정말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그런데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고정된 생각과 판단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고 사색하면서 그런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부수고 싶다. 나를 지우는 작업이지만,
...동시에 진짜 나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일본, 현재진행형
일본은 내게 특별한 나라다. 예전에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고정관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경험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런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주었다.
많은 일본 상사들에게 배운 것들, 함께 운동하며 맥주를 나눴던 친구들 덕분에 나는 일본 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했다. 나에게 일본은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일본에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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