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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간] 잠깐만요스테이@도쿄 2025. 1. 28. 16:39
스피커를 샀다.
보스 사운드, 모델 번호 442591.
블루투스 이름은 Nomadic Beats.
중저음보다는 클래식과 팝송을 적당히 소화해내는 그런 포터블 스피커였다.
마샬과 한참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보스를 선택했다.
귀는 늘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고개를 끄덕이듯 보스가 맞다고 했다.
베스트 바이 매장을 몇 바퀴나 맴돌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점원이 다가왔다.
“May I help you?”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 말했다.
“좀 더 볼게요.”
그러곤 구석에 쌓인, 유난히 깨끗하고 손상 없는 보스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손에 스며든 그 상자의 감촉은 왠지 모르게 앞으로의 일상을 약간 바꿔줄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다른건 몰라도 스피커 음질과 협상하기 싫다고 했다.
귀만 고급이라 일상이 불편하다.음악은 내 일상에 조미료 같은 존재다.
적당히 뿌리면 매일이 조금 더 견딜것 처럼 느껴진다.
출장이 잦았던 때는 호텔방에서, 출장 없는 날은 사무실에서 틀었다.
마른 사막에 소나기가 스미듯, 음악은 메마른 시간을 적셔준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Calms라는 어플이 있었다.
직원들을 위해 무료라기에 시도했지만, 내 이메일 주소는 끝끝내 승인되지 않았다.
결국 사장님 이메일을 테스트 삼아 넣어봤더니 바로 승인이 되었다.
오 마이 갓.
이거… 사장님이 보셔도 괜찮으시길.
요즘엔 Calms 어플에서 빗소리, 파도 소리, 시냇물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틀어놓는다.
자연의 소리는 키보드의 리듬과 그대로 스며든다.머리를 식힐 겸 사무실 발코니로 나왔다.
차갑지만 맑은 공기가 나를 감싸는 순간, 폐가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무실의 답답한 공기가 무언가에 눌려 있던 풍선을 터뜨리듯 날아갔다.
하늘 끝자락에 걸린 태양은 점점 짙어지며 마지막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저 태양은 하루를 보내며 애틋함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미련일까?
왜 저녁만 되면... 저리 안타까워 할까...
도시는 저녁이 되기 시작했지만, 집에 온 사람들보다 아직 빈 방이 많을 시간이었다.
수많은 맨션들은 주인이 없는 공간을 어깨로 떠받치며 묵묵히 서 있었다.
가로등 아래 누군가 쓰레기 봉투를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내일이 쓰레기 날인가 보다.일상은 언제나 이런 작은 틈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 틈은, 어느새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잠깐만 바람을 쐬러 나왔다.
저녁은 보랏빛 하늘이 아늑하기만 하구나.'스테이@도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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